지난 포스팅 이어서 작성해보겠습니다.

 

1936년 2월 26일, 20대 청년 황도파 장교들이 주축이 되어 쿠데타를 일으켰습니다.

 

 

2.26사건이 일어난 당시는 이미 황도파가 육군성 중앙을 장학한 통제파에 밀려나 있던 때 였습니다. 이 때 항거한 황도차 장교들은 20대 청년 장교들이었는데요, 초기 도쿄의 주요 정부 기관을 점거하고, 사이토 마코토

, 다카하시 고레키요, 스즈키 간타로 등의 일본 최고위층 인사들을 습격해서 살해하였습니다. 황도파는 일본 총리였던 오카다 게이스케를 살해 하는게 목표였지만 차량으로 대피하는 통에 실패하였습니다.

 

그 당시 천황이었던 쇼와덴노가 황도파의 이런 행동들에 매우 화가나 상황이 역전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자신의 부덕을 탓했었지만, 스즈키 간타로 등 쇼와덴노가 신임하던 중신들이 살해당하면서 쇼와 덴노의 노여움을 초래하였습니다. 2월 27일 천황은 원대복귀 명령을 하였고, 쇼와 유신을 외치던 황도파는  명분을 잃으며 혼란에 빠졌습니다. 다음날 군부는 많은 병력을 동원하여 무력진압에 나섰고, 육군과 해군은 해군 대장출신인 사이토 마코토가 살해 당한 것에 분노하여 함대를 끌고 진압에 참여했습니다.

 

결국 황도파는 투항했습니다. 2월 29일 병사들과 하사관들이 투항했고, 그 이후 장교들 중 노나카 시로와 고노 히사시가 자결했습니다. 나머지 장교 17명과 예비역 장교3명은 체포돼 파면과 재판부에 회부되었습니다. 이들은 천황의 이름을 팔아먹고, 단순 테러가 아닌 쿠데타였기 때문에 중형이 선고됐습니다. 쿠데타에 가담한 육군 장교 16명은 사형판결을 받고 총살되었습니다.

 

2.26사건 이후로 황도파는 자멸하였고, 이제는 통제파가 일본 군부에서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하였습니다. 세계의 열강 각국에서 집산주의를 대두하였고, 대공황에 대해서는 효용성을 나타낸 블록경제에 대한 선망이 나타나면서 본래의 목적과 다르게 변질되어갔습니다. 그러면서 합법적으로 정부에 압력을 가하고, 자신들과 맞지 않는 외교 정책에 대해서는 통수권 침범을 가지고 비협력적인 태도를 취하는 파벌로 변해갔습니다.

 

이후 중일전쟁이 발발하면서 폭주하기 시작한 일본제국은 아시아를 서구 열강으로부터 해방시킨다며 팽창주의, 군국주의적으로 행동하며 이 과정에서 미국과의 관계는 급속도로 냉각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치독일, 이탈리아 왕국과 삼국 동맹 조약을 체결하면서 추축국의 일원이 되었습니다.

 

 

제 2차 세계 대전 일본 제국

오늘은 2차 세계 대전에서 일본제국과 중일 전쟁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일본제국은 메이지 유신 이후에 아주 성곡적인 근대화를 이루면서 많이 발전하였습니다. 청일전쟁에서 이기면서 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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