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2차 세계 대전에서 일본제국과 중일 전쟁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일본제국은 메이지 유신 이후에 아주 성곡적인 근대화를 이루면서 많이 발전하였습니다. 청일전쟁에서 이기면서 타이완섬을 얻고, 러일전쟁에서 승리하여 남사할린과 대한제국을 병합하기까지 하였습니다.

 

하지만, 1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에는 유럽국가들이 생산력을 되찾으면서 미국, 유럽 등에 비해 열등한 품질을 가진 일본의 산업은 경쟁력을 잃고 수출이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서구 열강들은 아시아의 새로운 열강으로 올라온 일본제국을 견제하기 시작했는데요, 그러면서 영일동맹이 깨졌고, 열강들이 압박하면서 워싱터 해군 군축조약을 하면서 해군 규모를 제한 받게 되었습니다.

 

관동 대지진이 일어남과 동시에 쇼와공황, 미국 대공황이 덮치면서 일본 경제는 수렁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이런상황에서 극우 보수 세력과 청년 장교층은 국민들이 불만을 표출하는걸 내새우며 정부에 대한 암살과 쿠테타를 일으켰고, 관동군은 만주를 침공하고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인 선통제를 꼭두각시로 하여 만주국을 세웠습니다. 일본은 산업은 성장했지만, 자원은 부족해서 수입에 크게 의존하고있었는데요, 천연자원이 넘치는 만주를 점령한 것은 일본에게는 아주 큰 행운이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만주국에 대한 세계의 여론이 부정적으로 바뀌면서 군부는 국제연맹을 탈퇴하도록 압박하였고, 일본은 국제연맹을 탈퇴하고, 고립주의 외교로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일본의 군부는 정치를 점점 장악해 갔습니다. 황도파와 통제파 둘로 나뉘었는데요, 황도파는 1930년대 극우 사상가들의 목표로, 일본의 부패한 기득권층을 처단하고 천왕에게 권력을 집중시키는 국가주의적인 사상입니다. 대외적으로는 서방과의 관계를 중시하며 소련에 대한 공격을 주장했습니다. 통제파는 군의 문민통제가 존중되고 입헌군주제가 유지돼야 한다고 여기며, 소련과 중국에 대한 외교적 입장도 황도파와는 정반대로 대립했습니다.

 

황도파는 사이토 마코토 내각에서 통제파에 밀려 중앙 정계에서 밀려났고, 이로인한 불만이 쌓이면서 1936년2월26일에 황도파 장교들이 주축이 되어 쿠테타를 일으키게 됩니다.

 

이 내용은 다음 포스팅에서 알아보겠습니다.

 

 

 

부정부패에 빠져있던 히틀러

오늘은 히틀러의 부정부패와 사치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독일 정권은 히틀러의 금욕적인 부분을 선전했지만, 이는 사실과 달랐습니다. 히틀러는 돈에 완전히 미쳐있던 부패한 독재자였다

goodthing12.tistory.com

 

 

'역사 > 제1,2차 세계대전' 카테고리의 다른 글

태평양 전쟁1  (0) 2024.02.12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제국  (0) 2024.01.29
부정부패에 빠져있던 히틀러  (1) 2024.01.19
인간적인 히틀러?  (0) 2024.01.15
히틀러의 종교에 대해서..  (0) 2024.01.12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