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의 사상은 염세주의, 변질된 니체주의, 민족주의에 기반합니다.

히틀러는 1차 대전의 패배 원인이 인류문명의 수호라는 슬로건을 내건 연합군을 이길 사상적 이념이 잡혀있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여 우생학, 인종주의, 사회진화론 등을 섞은 나치즘을 내세웠습니다. 히틀러가 주장했던 독일민족의 생존권 영역은 독일 민족의 영역 확장 개념에 먹지 않으면 먹힌다는 식의 사회진화론적 주장을 도용한 결과물입니다.

 

히틀러는 1905년에서 1914년가지 오스트리아 빈에서 살았습니다. 당시에 오스트리아 정치에 관심이 많아  각 정파의 전략과 전술, 장단점 등을 분석하는데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마르크스주의 정당으로부터 대중주의를, 기독교주의 정당으로부터 반유대주의를, 범게르만주의 정당으로부터는 독일 민족주의를 받아들였지만, 마르크스주의의 사해동포주의나 기독교의 엘리트주의 등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각 정파의 장점만 받아들이며 자신만의 사상을 발달시켜 나갔습니다.

 

히틀러의 나치즘은무너져버린 민족적 자부심을 일으켜세우고, 내부로부터 중상을 인정하며 패전을 합리화시키는 사상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사상은 결국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케 되었습니다.

 

 

독일민족 조차도 히틀러의 파괴도구로 여겨졌고, 독일의 패배가 확정되면서 히틀러는 독일 자체와 함께 자폭하려고 했습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자기 도취적인 파멸의 미학에 빠져서 가능한 한 많은 사람과 문명이 자신과 함께 파멸하도록 모든 힘을 다했다고 합니다.

 

히틀러는 나치 독일이 멸망한 후로 미국을 중심으로 서구 사회와 소련이 대립할 것이고, 소련이 세계를 지배할 것이라 예측했습니다. 서구권의 민주주의는 나약하기 때문의 소련의 중앙집권적 체제에 맞설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이것은 바이마르 공화국 시절의 불안정한 민주주의에 대한 혐오에 기인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히틀러는 세습 군주제에 대해서는 매우 부정적으로 평가했는데요, 그 이유는 1차 세계 대전 이전에 독일 제국의 군주제 체제에 대한 반감에서 기인했을 수 있습니다. 또한 히틀러는 자본가 계급에는 속할 수 있었을지 몰라도 귀족계급에는 속할 수 없어서 비귀족들을 멸시하는 귀족들과 자주 대립하기도 하였습니다.

 

다음시간에는 히틀러의 인종주의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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